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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 후설의 현상학

365일페스티벌 2022. 6. 16.

에드문트 후설에서 의해서 창시된 철학을 현상학이라고 부릅니다. 신칸트 학파와 같이 대상을 의식 또는 사유에 의해서 구성하는 논리적 구성주의에 서지 않고, 분석철학과 달리 객관의 본질을 진실로 포착하려는 데에 철학의 중심으로 두는 것입니다. 경험과 의식의 구조들을 철학적으로 연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현상학의 선구자는 베른하르트 볼차노의 논리학과 프란츠 브렌타노의 심리학을 들 수 있습니다. 볼차노는 명제가 나타내는 의미는 그 진위에 상관없이 주관에서 독립하여 그 자체로 성립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브렌타노는 이와 같은 객관적인 진리의 심리학적 포착을 중심 문제로 삼습니다. 그는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이라는 점에 주의하여, 의식 현상의 본질은 대상을 지향하는 데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브렌타노의 제자 알렉시우스 마이농은 이와 같은 의식의 지향성이라는 관점에 의거하여 대상의 본질 구조를 밝히려 했습니다. 그의 대상론은 보통 표상되는 현실적인 대상만이 아니고, 다만 사유될 수 있을 뿐인 비현실적인 것도 충분한 대상으로서 인정하는 것이었습니다. 후설의 현상학은 위와 같은 두 면을 이어받아, 한편에서는 객관적 진리를 어디까지나 엄밀하게 나타내려고 하는 동시에, 이것을 있는 그대로 포착하려 하는 기술학입니다. 그는 사상 자체 에로라는 것을 모토로 합니다. 그에 의하면 철학은 엄밀학, 보편학이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제까지의 철학은 자기 자신에 대한 자성이 불충분하였고, 또 참으로 객관적인 존재로 향하지 않고 다만 주관적인 세계관을 목표로 하였기 때문에 철학의 무정부 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철학은 이러한 점을 고쳐야만 수학과 같은 보편학으로 되어 철학의 기초학, 엄밀학으로서의 철학이 된다고 합니다. 거기서의 후설은 그의 철학의 방법으로 현상학적 환원이라는 것을 제창하였습니다. 이 것에는 두 단계가 구별됩니다. 철째의 형상적 또는 본질적 환원은 주어진 사물, 의식의 내용에 관해서 자유 변경을 가함으로써 가변적 요소를 제거하여, 거기에 발견되는 불변 요소를 본질 직관에 의해서 포착하는 방법입니다. 이에 의해서 본질학으로서의 순수 현상학이 가능케 됩니다. 이것은 말하자면 개별 물에 즉응 해서 이데아를 직관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환원은 어떠한 본질학에도 필요한 방법으로 반드시 현상학에 특유한 것은 아닙니다. 초월론적 환원은 현상학에 특유합니다. 협의의 현상학적 환원은 또 초월적 환원이라고 불리는 것으로서, 상식이나 과학이 우리들의 밖에 초월하여 있다고 이해하는 존재를 순수의식으로 환원하는 것입니다. 의식이란 무엇에 관한 의식인데 이와 같은 의식구조를 후설은 지향성이라 부릅니다. 요컨대 상식 과학의 내용을 지향성이라는 구조를 가지는 순수의식으로 환원하여 거기에 사물의 순수한 본질을 포착하는 것이 현상학의 주제입니다. 바꿔 말하자면 모든 의식 양태의 근저에 순수의식을 구하여, 일체를 거기에 영사하여 보는 셈입니다. 즉 모든 의식 내용에 관해서, 긍정 부정의 판단을 내리는 것을 보류하고, 그것을 일단 괄호 안에 넣습니다. 이리하여 최후에 아무리 해도 괄호 안에 넣어버릴 수 없는 현상학적 잔여로서의 순수의식에 도달합니다. 데카르트의 코기토의 길을 답습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이 순수의식은 칸트의 선험적 주관처럼 초개인적인 논리적 의식이 아니고, 완전한 개인적 의식입니다. 자아론적 환원만으로는 불충분하다 하여 이것에 다수의 자아 또는 주관에 의한 공동적 환원인 간주관적 환원을 첨가하였습니다. 그것에 의해서 비로소 세계 전체가 의식 내용으로 되는 것이고, 또 거기에 비로소 일체의 존재적 본질의 엄밀한 포착이 성취되는 것입니다. 자아론적 환원이 데카르트에 위치를 잡는 데 대해서, 간주관적 환원은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에 있어서의 예정 조화라는 관념에 위치를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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